[인터뷰] 19년차 출판사의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걸 시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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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차 출판사의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걸 시도"하는 법

 

2017년, 아주 수상한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습니다. 한강 유람선을 빌려서 1박 2일 동안 진행된 이 모임은 이름하여 ‘장르문학 부흥회’. 장르문학을 믿(사랑하)고, 4만 원가량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신청해 즐길 수 있는 이 부흥회를 기획한 것은 북스피어 출판사입니다. 그때가 처음으로 북스피어라는 출판사가 제게 각인 되었던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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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람선을 빌려 진행했던 장르문학 부흥회처럼 미야베 미유키, 덴도 아라타, 마쓰모토 세이초 등 국내외 장르 문학 작가의 걸출한 작품을 꾸준히 소개해 온 북스피어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싶은 일을 많이 벌렸습니다. 독자와 함께 밤새 교정을 보기도 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열렬 독자들이 직접 작가를 인터뷰할 수 있게 일본으로 보내주고, <르 지라시>라는 장르 소설 홍보지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미출간 된 원고를 독자들과 함께 읽고,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과 표지는 물론 마케팅 전략도 함께 구상해 보는 독특한 북클럽을 텀블벅의 자매 서비스인 ‘스테디오'를 통해 진행했는데요.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클럽은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자마자 빠르게 마감되며 큰 호응을 받았는데요. 

 

늘 신선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출판사만의 팬덤을 쌓아온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에게 그간 해온 여러 시도에 관해 묻고, 19년 차 출판사의 ‘책 팔기 비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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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북스피어 출판사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아웃사이더 출판사에서 잡지와 단행본을 만들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아홉이던 2005년에 북스피어 출판사를 창업하고 미스터리 소설을 만들어 출간했는데, 돈도 벌고 출판사 이름도 알리자는 차원에서 <한겨레>, <경향>, <시사인>, <문화일보>, <국민일보>, <채널예스> 등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아아 저건 내가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무조건 했습니다. 그게 북스피어 출판사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서 10년 동안 ‘어둠의 책방’을 진행하기도 하고 <한겨레출판문화센터>, <서울북인스티튜트>, 출판사, 도서관 등에서 강의도 하고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책도 썼습니다. 출판사를 차리고 1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돈만 주면 뭐든 합니다. 그게 ‘북스피어’라는 이름을 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Q. 북스피어는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오는 것으로 출판 업계에서는 유명한데요. 북스피어의 첫 책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아발론 연대기>라는 총 여덟 권 분량의 시리즈가 북스피어의 첫 번째 출간물이었죠. 8권짜리 시리즈물을 ‘첫 출간물'로 기획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모험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북스피어 출판사를 차린 이유는, 전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미완으로 남겨진 여덟 권짜리 판타지 소설 <아발론 연대기>를 완간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작비가 빠듯해 직원을 뽑기는커녕 외주를 맡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4,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원고의 교정을 내부에서만 감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문득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대다수 편집자들이 인쇄 직전까지 교정지에서 맞춤법에 어긋나는 대목이 발견되지 않기를, ‘이번에 내가 만든 책에 오탈자가 있으면 어쩌나, 띄어쓰기가 틀렸으면 어쩌나’를 걱정하며 전전긍긍 살아갑니다. 저도 인쇄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책에서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눈에 불을 켜고 교정지를 읽고 또 읽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한 대목에서 어이없는 오자가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한데 훈련을 받은 편집자도 발견하지 못한 오자를, 책이 출간된 이후에 편집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독자들이 손쉽게 발견하는 경우 또한 부지기수잖아요. 그 점에 착안하여 시작한 게 ‘독자교정’입니다. 

 

여덟 권짜리 첫 책의 독자교정 장소는 북스피어 사무실이었어요. 블로그에 독자교정자 모집 공고를 올렸을 때 예상외로 많은 이들이 신청했는데, 참가한 독자들이 대부분 학창 시절에 추리, 판타지, SF, 무협소설 따위를 읽다가 박해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책깨나 읽는다는 얘기를 하려면 도스토옙스키 정도를 들먹여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날의 모임은 일종의 해방구였다고 생각해요. “<퇴마록>이 저의 최애 소설이에요” “<영웅문>을 수십 번 읽었을 거예요” “<은하영웅전설> 덕분에 독서에 눈을 떴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모임은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으니까. 


그 뒤로 밤샘 독자교정, 청량리에서 강릉까지 완행열차를 타고 교정을 보는 ‘낭만독자 열차교정’, ‘캐나다 10박 11일 독자교정’ 등의 행사로 점점 스케일이 커졌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의 독자와 눈을 맞추는 것이 더 효과적인 마케팅일 수 있겠다는 생각. 집세를 내지 못해 고민하다가 자신의 집을 여행객에게 빌려준 브라이언 체스키의 고육지책이 세계적인 기업 에어비앤비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어디든 내 집처럼’이라는 분명한 콘셉트 때문이었고, 이 콘셉트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브라이언의 첫 번째 게스트 덕분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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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텀블벅은 2011년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사실 그때만 해도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개념은 국내에 굉장히 낯설었고, 초반 몇 년 동안은 지금처럼 프로젝트가 성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스피어에서 2012년에 자체 블로그를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했던 적이 있고, 기록적인 성과를 낸 적이 있죠. 텀블벅을 통해 진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며 저희에게도 호재로 작용했는데요.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출발했나요?

 

만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은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로부터 기를 조금씩 모아 적을 무찌르지요. 2012년에 저는 이 필살기의 이름을 딴 ‘독자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이야 크라우드 펀딩이 흔하지만, 그때는 출판계에서도 전무한 일이었어요. 모집은 지금의 텀블벅과 같은 펀딩 사이트를 통해 진행하진 않았고, 오로지 북스피어 블로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원기옥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 주위 출판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더군요. “강풀 작가의 <26년>이라는 (전두환 대통령을 저격한다는 내용의) 만화처럼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독자들이 왜 북스피어에 돈을 모아주겠어?” 

 

지당한 얘기입니다. 저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어요. 독자들이 선호하는 출판사의 책을 구입하는 것과, 나오지도 않은 책을 두고 ‘투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하지만 북스피어 독자들이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마감이 닥쳐서 북스피어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바빠도 끼니 거르지 말라며 라면을 박스째 보내주고, 매년 이런저런 기념일(동지, 크리스마스, 창립일)을 챙겨주고, 직접 수확한 작물이며 북스피어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 새겨진 십자수까지 만들어 주는 독자들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시도는 설령 실패해도,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겠다 싶어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대략 1,000만 원 정도만 모여도 대단한 성과일 거라 여겼어요. 펀딩하는 책의 제목도 미정, 표지도 미정, 내용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렇게 이벤트가 시작되었고 매일매일 상황판을 업데이트하며 얼마나 모였는지 북스피어 블로그에 공개했습니다. 그리하여 대관절 어떤 결과가 도래했느냐. 독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준 돈이 열흘 만에 5,000만 원(두 번째 펀딩은 8,000만 원) 넘게 모였습니다. 투자한 독자들이 스스로 마케터가 되어 출판사에서나 할 법한 홍보를, 즉 자발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자비를 들여 책을 경품으로 거는 행사를 진행하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지요. 

 

그 돈으로 저는 ‘떼거리 독자 인터뷰단’을 꾸려서 일본으로 날아가 해당 펀드로 마케팅한 소설의 저자를 인터뷰하는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했을까요.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제목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지만 지금껏 북스피어가 출간해 왔던 것처럼 콘셉트가 확실한 내 취향에 맞는 소설이겠지’ 하고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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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서의 마포 김사장님

 


Q. 북스피어는 독자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교정 교열을 보는 ‘교정 교열 캠프', 장르 소설 팬과 함께 1박 2일 동안 장르 소설에 대해 떠드는 ‘장르 소설 부흥회', 강릉행 완행열차를 타고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을 읽는 ‘낭만독서 기차여행'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하나만 꼽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책을 팔기 위해' 해온 시도 중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가 궁금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출간할 즈음의 일입니다. 어느 한가로운 주말, 저는 방바닥을 뒹굴거리며 멍하니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네, 저는 티비 마니아입니다). 

 

아마 XTM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상에 이런 대회가 있더군요. 이름하여 익스트림 다림질 대회(Extreme Ironing). 귀찮기 짝이 없는 다림질이라는 행위를 일약 스포츠로 승화시킨 이 대회는 1997년에 영국의 어떤 젊은이가, 마찬가지로 저처럼 방바닥을 뒹굴거리다가 고안해 냈다고 합니다. 한데 영국에서 조촐하게 시작됐던 이 대회가 마치 재크와 콩나물에 나오는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쑥쑥 자라더니 급기야 다른 나라로까지 전파되어 지금은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성장하고 말았습니다. 

 

상금도 주고 트로피도 주고, 무엇보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공식 페이지를 만들어 다른 이들이 공개적으로 올리는 사진을 보며 서로서로 박장대소하는데(아마도 이것이 포인트), 정말 굉장합니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으며 익스트림 다림질 대회 사진을 바라보던 저는,

 

  1. 세상에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이 잔뜩 있구나...에서
  2. 그래도 상당히 재밌어 보이긴 해...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3. 가만 있자, 저걸 어떻게 좀 재활용해 보면...이라는 리싸이클적 마인드로 사고를 전환,
  4. 책으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라는, 자못 어처구니를 상실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든 것이 바로, 익스트림 리딩(Extreme Reading) 대회. 이 대회가 추구하는 철학(이라고까지 얘기하면 너무 거창하지만)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극한의 상황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적 마음가짐.
  2. 그게 어렵다면, 오! 저런 상황에서도 책을 읽다니, 라는 정도도 무방.
  3.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책 읽는 사진이나 한 방 찍어볼까, 하는 자세까지도 양호.
  4. 어쨌거나 웃기면 됨.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나는 과연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보기 위해 강원도 일대를 간첩처럼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익스트림 리딩(Extreme Reading) 대회에 어울릴 법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종의 샘플인데, 아직 초봄임에도 불구하고 훌러덩 옷을 벗어 던지고 입수했다가... 삼 초 만에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뭐 그래도, 익스트림 리딩 대회를 개최했던 이유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가 잘 팔려서 괜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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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기획도 많았지만, 타 출판사와 함께 진행한 기획도 많았어요. 책 전체를 전면 띠지로 가리고 랩핑하여, 책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 ‘블라인드 북'을 판매하는 ‘개봉열독'은 은행나무와 마음산책 출판사와 진행하셨죠. 장르문학 소식지라는 이름으로 발행했던 ‘르 지라시'의 경우에는, 해당 지면에 실릴 책 광고를 여러 출판사에게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북스피어에서 내는 소식지지만, 동시에 다양한 출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기획물이 된 셈인데요. 이렇게 다른 출판사들과 협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출판사를 막 차렸던 초창기에는 내고 싶은 전집이 많았습니다. 엘러리 퀸이나 아시모프 전집 같은. 하지만 바람일 뿐. 구멍가게 수준의 출판사에서 그걸 실현하기란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시리즈는 자금이 있는 메이저 출판사에서나 가능하겠구나. 

 

그러다가 문득, 몇 개의 작은 출판사가 힘을 합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 엘러리 퀸의 모든 작품을 두세 개 출판사가 함께 내는 거죠. 디자인과 장정을 통일해서. 마치 한 출판사에서 만든 시리즈인 것처럼. 

 

한 작가의 책을 여러 출판사가 디자인과 장정을 통일해서 낸 경우가 그때까지 전혀 없었거든요. 저는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뉴스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당시 북스피어는 미야베 미유키가 편집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이라는 세 권짜리 시리즈를 출간하여 고전하던 중이었거든요. 사실 이 책은 야심작이었지만 판매가 신통치 않아서 이후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을 내려던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역사비평사 조원식 주간님이랑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출판사 연합으로 걸출한 작가의 전집을 통일된 장정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 그 작가로 마쓰모토 세이초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추가되었던 거예요. 우리는 금세 의기투합했고 논의는 급물살을 탔지요. 

 

게다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추리소설가이자 역사가 심지어 고고학자”이기도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전집을 북스피어와 역사비평사가 힘을 합쳐 낸다는 건 마침맞은 기획이기도 했지요. 그리하여 2012년 1월, 역사비평사와 북스피어는 각각 <D의 복합>과 <짐승의 길>을 출간했지요. 

 

이 소식은 <日 추리소설 광팬 2명, 일냈다>(동아일보),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원조 작품 이례적 컨소시엄 통해 번역출간>(한겨레신문) 같은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출판사의 합작품이라는 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었고, 덕분에 초판을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북스피어가 단독으로 세이초의 소설을 출간했다면 전혀 주목받지 못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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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스피어가 스테디오를 통해 진행한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

 


Q. 이번에는 스테디오를 통해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어요.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은 스테디오의 매니저님이 제안해 준 덕분에 진행할 수 있었던 작은 실험이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미스터리 작가,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독자에게 잘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북클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거든요. 

 

이미 출간된 책을 함께 읽는 북클럽이 아니라(그건 이미 차고 넘치니까)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을 함께 읽는 북클럽입니다. 즉,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은 편집자와 독자가 미스터리 소설을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떨까', ‘어쩌면 편집자들끼리 만드는 것보다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북클럽에 가입한 독자들은 300쪽 분량의 미출간 원고를 읽는 동안 각종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원서와는 다른 한국어판의 제목을 정하고, 표지 디자인 결정에 참여하고, 오탈자를 찾고, 해당 원고에서 홍보에 사용할 만한 문구를 뽑고, 마케팅에 관한 아이디어도 내고. 각각의 단계에서 저는 기획, 편집, 제목, 디자인, 제작, 마케팅에 관한 칼럼을 쓰고 북클럽 회원들의 질문을 받아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출판사가 어떤 식으로 책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식으로 대략 한 달에 걸쳐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저로서도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회원들은 그동안 제가 타성에 젖어 진행해 온 ‘책 만들기의 전 과정’에 대해 다양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마치 대국을 관전하다가 바둑의 고수가 미처 보지 못한 수를 지적하는 훈수꾼처럼 말이죠.

 

마침내 모든 작업을 마쳤을 때, 이판사판 북클럽 회원들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겨 주었어요. 

 

“출판사와 독자가 소설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기획이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잘 들어보지 못했던 출판계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시간.” 

 

“덕분에 북스피어 출판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됐고 또 애정도 생겼다. 이번 책이 꼭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변에 많이 알리겠다.” 

 

“항상 책을 사보기만 하고 제작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었는데 좋은 경험을 했다.” 

 

“저는 대표님께서 올리시는 글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신기한 경험을 주심에도 깊이 감사드리며 신간의 출항이 멋지길 기원합니다.” 


이판사판 북클럽은 33,000원을 회비로 내야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금액을 지불한 독자들이 허투루 소감을 남겼을 리 없습니다. 한 달 동안의 온라인 책 만들기를 통해 나름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 이판사판 북클럽 회원들과 만든 소설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전 세계 배급을 준비 중이에요. 출시일이 확정되면 대대적으로 광고를 할 듯한데, 저도 그 타이밍에 맞춰 책을 출간하려고 대기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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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의 첫번째 미션 포스트


Q.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은 50명 한정으로 진행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마감이 되어버렸어요. 이러한 인기를 예상하셨나요?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만든 책의 원제는 <지면사들地面師たち>입니다. 이 소설은 2017년에 일어난 ‘세키스이하우스 사건’(한국에도 보도될 정도로 파장이 컸습니다)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요. 일본의 어느 사기조직이 건물주 행세를 하며 대형 건설사를 감쪽같이 속여 거액을 챙긴 사건인데요.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면밀한 취재를 통해 그들의 조직적인 범행을 압도적 리얼리티로 완성시킵니다. 

 

원서에는 “새로운 시대의 피카레스크 소설이 탄생했다!”라고 적혀 있는데, 피카레스크 소설이란,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들을 도덕적 결함을 갖춘 악인으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문학 장르의 하나지요. 

 

실제로 소설 <지면사들>에서 전직 법무사와 토지 정보를 수집하는 도면사, 사칭 대역을 준비하는 수배사 들이 어떻게 서류를 위조하고 당사자를 속여 넘기는지 묘사하는 대목을 읽고 있노라니, 기가 막히더군요. 내가 저런 걸 당하면 얼마나 억울할지 상상해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마 ‘전대미문의 부동산 미스터리’라는 소설의 내용 때문에 다들 서둘러 북클럽에 가입한 게 아닐까 싶어요.


Q. 그간 북스피어에서 해온 다양한 시도가 사실은 모두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요. 반면 스테디오에서 진행한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은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이번에 진행해 보니 어떠셨나요?

 

사실 오프라인 행사는 손에 잡히는 실감은 강해도 부담이 큽니다. 다들 처음 만나기 때문에 긴장도 되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불안도 있거든요. 그래서 행사를 한번 치르고 나면 제가 일 년쯤 늙어요. 한데 온라인으로 진행하니까 심정적으로는 굉장히 편하더군요. 효율 면에서도 오프라인보다 높고요. 앞으로 종종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지금, 향후 또 해보고 싶은 기획이 있으실까요? 2기를 기대해 봐도 되는 걸까요?

 

제1기 이판사판 미스터리 북클럽에서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소설을 함께 작업했습니다만, 제2기에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함께 작업해 보면 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졌습니다. 다음에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신작을 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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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피어에서 출간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소설 시리즈 

 


Q. 텀블벅에는 직접 출판에 도전하는 다양한 분야의 저자는 물론, 1인 혹은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님들이 많이 모여있는 플랫폼입니다. 1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출판사를 운영한 입장에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취향에 따라 각 개인이 소비하는 플랫폼과 콘텐츠가 엄청나게 다양해져 대체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진 오늘, 출판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책 판매를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매일 담당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19년째 출판사를 운영하는 저도 마찬가지예요. 구원투수나 대타에게 뒤를 맡길 여력이 없어서 선수 로테이션에 변화를 주기 힘든 구단의 감독처럼 암담한 기분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는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강력한 개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인간은 대개 클리셰가 느껴지지 않는 독자적인 아이디어에 주목하게 마련이니까 말이죠.

 

얼마 전 가수 윤종신 씨와 정재형 씨가 함께 출현한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재형 씨가 요즘 음악이 너무 잘 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와서 만족스럽다는 얘기를 하자 윤종신 씨가 웃으며 이렇게 묻더군요. “근데 안 팔리지?” 자기도 요새 음악이 잘 되지만 도무지 팔리지 않는다면서. 어째서일까.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기운이 있어서 듣는 이들이 좋아하고 응원해 주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기운이 사그라든 것 같다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기운을 귀신같이 알아봐.” 

 

이 말에는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길게 보았을 때 그들을 열광시키는 건 완성도보다, 다소 미숙해 보이더라도 비바람을 견디며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걸 시도하는 열정 같은 게 아닐지. 콘셉트를 분명히 하고 실존하는 한 사람의 독자를 심층 분석하여 가장 영향력 있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파이팅일 수도, 혹은 절실함일 수도 있는 기운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창작자를 비롯한 콘텐츠 생산자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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